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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소설21

괴물꽃: 5. 성장 동굴은 칙칙하고 올 이유가 없는 외진 곳이지만 친절하게 변모한 마을 주민이 엔젤라의 호기심을 건드렸다. "서쪽 동굴에 가서는 안 돼." 왜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오지랖이 이어졌다. "간혹 사람들이 간음을 행하거든." 남자가 음흉하게 웃을수록 헤나는 발바닥이 간지러웠다."간음이 뭔데?" 엔젤라가 버릇없이 고개를 까닥였다. 눈앞에서 불쾌한 미소가 짙어졌다. 남자가 입을 벌리려던 때 꽃이 엔젤라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다른 곳에 가자고 꽃이 눈치를 주길래 엔젤라가 흉터투성이 손을 우기고서 자리를 벗어났다. 헤나는 질질 끌려가면서 뒤를 힐끔 봤다. 일이 바라던 대로 풀리지 않자 남자는 땅에 침을 뱉었다. 죄 없는 흙을 신발로 뭉개고 짓밟더라.  엔젤라가 영특하고 똑똑하다고 한들 그래봤자 어린 아이다. 한심하기 짝이.. 2024. 7. 28.
괴물꽃: 4. 사랑 꽃이 걸음에 익숙해지면서 덩달아 엔젤라에게 묻었던 끔찍한 피멍은 옅어졌다. 상처가 낫는 과정을 같이 본 주제에 헤나는 손을 잡기 전마다 꼬박꼬박 소녀에게 물어봤다. "손 잡아도 돼?" 엔젤라는 손을 툭 내민다. "안 아파?" 헤나는 엔젤라의 손목을 살피다가 조심스레 손에 깍지를 꼈다. 손을 꽉 잡아도 불평 없이 도와줬다. 엔젤라와 손을 마주 잡고 헤나가 천천히 발을 땅에서 뗀다. 꽃은 엄지손가락에 힘이 살짝 들어갔다. 미약한 압박감에 엔젤라가 눈을 깜빡거린다. 언제 손길이 이렇게 능숙해졌지? 고지식한 헤나는 한 가지 규칙을 사수했다. 꽃은 모든 손가락을 똑같이 접거나 폈다. 손가락 마디마디도 같은 힘으로 움직였는데 그중 하나만 다르게 쓰다니. 무궁무진한 성장속도에 엔젤라는 헤나에게 내심 놀랐다. 괴물꽃이.. 2024. 7. 28.
괴물꽃: 3. 친구 "고양이." "이빨." "빨강." "강아지." 둘이서 끝말잇기를 했다. 헤나가 입이 익숙해지도록 선택한 방법이다. 놀이에서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최고지. 엔젤라는 제 잔머리에 히죽 웃었다. 꽃을 놀릴 기대로 어깨가 들썩거린다. 소녀가 어린아이처럼 굴자 헤나는 미소 지었다. 엔젤라가 온몸으로 보여주는 재롱에 꽃은 만족스럽다. 역시 인간을 흉내 내길 잘했다.  "지층." "지층이 뭐야?" "그게 뭐냐면..." 헤나가 팔을 베베 꼰다. 소녀에게 단어를 알려 줄 수 있다니. 꽃은 현실이 와닿지 않고, 엔젤라는 듣는 둥 마는 둥 꽃이 실수하길 기다렸다. 어눌한 말로 지식을 이으니까 내심 놀랬다. 지루한 대답이 길게 늘어지자 엔젤라는 하품이 나온다. 그만하라고 헤나의 코를 꼬집었다. 엔젤라가 예의를 빼.. 2024. 7. 28.
괴물꽃: 2. 엔젤라 소녀가 비밀기지로 삼은 무덤은 둘이서 노는 놀이터가 됐다. 이곳 만이라면 꽃은 어디로든 몸을 빼꼼 내밀었다. 땅으로 스며들어서 땅에서 솟는 모습은 역겨웠지만 엔젤라는 괜찮은 척 허세를 떨었다. 소녀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휙 돌렸다. 헤나는 부들거리는 손을 모른 척 소녀에게 눈을 접었다. 손수 만든 무덤 앞에서 둘은 납작하게 앉았다. 마주 보고 손장난을 쳤다. 엔젤라는 꽃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봤다. 온몸에 진흙이 묻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다니 어떤 의미로는 참 대단하다.  "너는 찝찝하지도 않냐?" 엔젤라가 헤나의 어깨에 묻은 흙을 털었다.  꽃 옆으로 덩달아 소녀는 엉덩이를 붙였다. 축축한 흙에서 태어났으니 머리카락은 잔뜩 더러웠다. 시간이 지나 말라버리자 머리카락이 더욱 푸석해 보였다. 깔끔.. 2024. 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