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창작20 괴물꽃: 20. 헤나(2) 엔젤라가 마침내 결말에 도착했다. 그녀는 몸을 틀어 꽃을 껴안았고, 허리에 얼굴을 뭉개다가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하나뿐인 친구가 존재했다. 엔젤라는 아직도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꿈에서도 닳을까 무서워 친구를 부르지 못했다. 그녀는 친구를 만지고 싶었다. 말랑거리는 볼을 직접 손으로 느끼고 싶었다.애석하게도 하얀 손이 말을 듣지 않더라. 단정한 얼굴을 향해 손가락이 올라가다가도 다시 내려오더라. 엔젤라는 친구를 제대로 만끽할 수도 없었다.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친구를 막상 만났어도 떨리는 손이 너무나도 분했고 비참했다. 엔젤라가 지독한 자학에 빠지기 직전 헤나가 떨어지는 손을 붙잡았다. 하얀 손을 조심히 이끌어 제 볼에 댔다. "앤지, 앤지." 꽃은 엔젤라가 저를 가꿔주니 저절로.. 2024. 7. 29. 괴물꽃: 19. 헤나(1) 까만 꽃길에 서 있던 엔젤라는 동쪽을 봤다. 그곳에서 태양이 하얀 동그라미를 살짝 뽐내자 발을 뗐다. 친구가 무슨 생각으로 이 까만 꽃길을 만들었을까. 헤나가 뿌려놓은 씨앗은 어디까지 이어졌을까. 꽃이 남긴 발자취는 커다란 유언장이자 이정표였다. 엔젤라가 길을 헤맬까 봐 친히 온갖 곳에 흔적을 남겨둔 사랑스러운 친구였다."펑펑 우느라 걘 기억도 못 할 테지만." 헤나가 벙어리였어도 이토록 심심하진 않았다. 꽃한테 입이 있든 없든 둘이서 함께라면 행복할 텐데.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들떴지만 발걸음은 무거웠다.헤나가 직접 심은 까만 화단이 보였다. 어딜 가도 꽃이 함께라 엔젤라는 속이 간질거렸다. 철부지였을 시기에는 제 심장이 낯설어지는 이 느낌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이제 엔젤라는 간음을 꿰뚫은 어른이다.그.. 2024. 7. 28. 괴물꽃: 18. 까만 여정 마법이 무색해질 만큼 시간이 흘러 과학이 마법을 대체했다. 발전한 세상은 산업시대를 맞이해 증기기관차가 연기를 내뿜고 시끄럽게 울어댔다. 정신없이 소음이 가득한 세상에 엔젤라가 태어났다. 하얀 피부, 노란 머리카락을 가진 그녀는 예쁘단 소문이 자자했다. 처음은 마을이었고 어느새 옆 동네까지 그리고 기차가 갈 수 있는 곳까지 아름다움을 향한 찬사가 퍼졌다. 그녀는 호화로운 집안의 외동딸로서 부모에게 깊은 사랑을 받고 오만하게 성장했다. 엔젤라는 부족함을 모른 채 모든 걸 누렸다. 엔젤라는 화려한 창틀에서 손으로 턱을 괴고 바람을 쐬었다. 시원한 공기가 그녀를 어루만졌다. 다정한 바람과 달리 그녀는 시큰둥했다. 평화롭고 원하는 대로 이뤄지는 세상을 바라보았다. 느적한 따분함에 그녀는 하품이 나왔다.아름다운 .. 2024. 7. 28. 괴물꽃: 17. 황금빛 행복 마법이 실린 공격은 강력했다. 더욱이 엔젤라는 마력이라곤 하나도 없어서... 급하게 아주 급하게 꽃은 제 몸을 복구했다. 멀쩡해진 손으로 그녀의 상처를 덮었다. 피가 철철 났다. 상처가 벌써 갈색빛이었다. 하얀 피부에 빨간 피가 닿아서 그래. 절대 마법 때문에 살이 썩는 게 아니어야만 해! 자꾸만 손가락 사이로 핏물과 진물이 샜다. 꾹꾹 눌러도 소용이 없었다. 엔젤라의 터진 옆구리에서 생기가 넘쳐 나와 빨갛게 축축해진다. 헤나는 펑펑 울면서 그녀의 얼굴도 살폈다. 엔젤라는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끔찍한 통증에 허우적거렸다. 그녀가 헤나의 어깨에 얼굴을 풀썩 기댔다. 피부에 닿는 호흡이 점점 약해진다. 따뜻한 피가 빠져나가면서 체온도 같이 앗아갔다. 꽃은 차갑게 늘어지는 엔젤라를 견딜 수 없어서 도와주라.. 2024. 7. 28.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