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창작20 괴물꽃: 12. 둘과 두 사람(2) 그간 참아왔던 호기심이 방출되는지 엔젤라는 중앙시장에서 눈을 반짝였다. 길을 다 외웠어도 제대로 된 구경은 오늘이 처음이라면서 그녀가 관심을 뚝뚝 흘리고 다녔다. 그토록 좋아하는 장신구와 옷이 주변에 천지였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물건은 죄다 빛이 나서 엔젤라는 질 높은 사치품을 매만지다 입이 감탄으로 벌어졌다. 곱디고운 옷감과 깔끔하고도 수려한 마감에 엔젤라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그녀가 옷에 매료된 사이 꽃은 엔젤라만 봤다.어두운 밤이어도 그녀는 보석보다 빛났다. 헤나는 반짝이는 눈빛을 제 속에 담고 싶다고 소원했다. 그동안 만끽하지 못한 관심을 모두 앗아갈 수만 있다면. 꽃은 그렇게 할 거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까맣게 미소 지었다. 한참 까다롭게 옷을 만져대던 엔젤라는 상인과 눈이 마주쳤다. 상.. 2024. 7. 28. 괴물꽃: 11. 둘과 두 사람(1) 둘은 오순도순 바닥에 앉아 침대에 기댔다. 엔젤라는 습관처럼 무릎에 책을 뒀고 헤나는 그녀의 어깨를 탐냈다. 그녀가 익숙하게 책장을 넘긴다. 꽃은 책에 몰두한 엔젤라가 생소했어도 새로운 면에 눈길이 간다. 하지만 하필이면 왜. 제가 부재중일 때 왜, 왜! 잃어버린 시간에 헤나는 속이 새까맣게 탔다. 엔젤라에게 제 옹졸함을 들키기 싫어 눈을 감았다."4월이 감미로운 소나기로 3월 가뭄을 뿌리까지 꿰뚫고..." 그녀가 좋아하는 구절을 읊는다. 지금까지 그녀와 책을 엮어볼 생각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데."그러고 보니 하얀 도시는 어떻게 됐어?" 꽃은 마지막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와 수도를 향하던 길에 봉변을 당했지. 헤나는 마음속으로 그 남자를 죽이고 또 죽였다. 몇 번을 죽였는지도 모르겠다. "여기가 수도.. 2024. 7. 28. 괴물꽃: 10. 화분(2) 제 미친 짓을 상기하자 엔젤라는 머리를 짚었다. 꽃을 위해 물어보지도 않는 변명을 속으로 만들었다. 언제쯤 눈을 뜰까. 엔젤라는 눈 감은 친구를 물끄러미 봤다. 단정한 얼굴은 점점 나무껍질처럼 투박한 표면을 자랑했고 피부에서 싹이 피어올랐다.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제 친구가 인간이 아니라고 세상이 못 박아준다.엔젤라는 귓가에 나긋한 환청이 들렸다. 곱게 접혔던 눈은 가물가물하다. 줄곧 함께였으니 엔젤라는 고독을 견디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들었던 화분을 창가에 뒀다. 엔젤라는 제 몸을 팔로 감싸며 몸을 숙였다. 어깨가 작게 떨렸다. 다시 친구랑 놀고 싶다. 자신이 깨기만을 기다렸던 식물에게 비법을 물어봤다. "너는 어떻게 그 새벽을 혼자 버텼니?"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풀리지 않는 호기심 대신 헤나에게 .. 2024. 7. 28. 괴물꽃: 9. 화분(1) "난 정상이길 포기했나 봐." 엔젤라는 창문을 배경 삼아 놓인 화분 앞에서 읊조렸다. 새초롬하게 새싹을 자랑하는 작은 풀잎을 그녀가 어루만졌다. 푸릇푸릇한 새싹을 손가락으로 꼬집었다. 그대로 손목을 돌리자 구부러진 가지가 일자로 얇게 펴진다. 엔젤라는 잎이 살짝 찢어지자 화풀이를 멈췄다. 그녀가 묵묵히 창문 밖을 본다. 가지에서 잎은 떨어진 채 삭막한 가지가 앙상했다. 연두색 눈은 제 화분과 바깥을 비교했다. 엔젤라는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눈치 없긴." 깨진 화분을 양손으로 든다. 갈라진 틈으로 흙이 흘러나왔다. 엔젤라는 화분에 박힌 단정한 얼굴을 봤다. 흙이 들어갈까 봐 눈을 꼭 감은 걸까. 엔젤라는 화분과 억지로 시선을 맞춰 보지만, 곧장 그녀도 눈을 감았다. 그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멀쩡한.. 2024. 7. 28.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