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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창작

괴물꽃: 13. 결혼식(1)

by 넴 박 2024. 7. 28.

식물한테 신발은 고역이다. 줄곧 맨발을 고집했으니 헤나는 발이 흙투성이였다. 성당은 더러운 발로 성스러운 이곳을 밟아선 안된다고 헤나에게 표했다. 버릇처럼 가지런한 양손으로 기도를 표했던 식물이 입장부터 막막하다.

"자네는 상식이라곤 없나?" 헤나가 어쩔 줄 모르며 끙끙거렸다. 어디 가서 말문이 막히진 않는데. 전제조건이 글러먹어서 돌파구가 없나. 실랑이가 길어지자 엔젤라는 쩍 하품을 했다. 아무리 졸라도 소용이 없자 꽃은 시무룩했다. 그 모습에 엔젤라가 묵묵히 팔짱을 꼈다. 그녀는 시선을 돌려 성당 내부를 살폈다. 벽에 걸린 신, 하얀 벽돌, 붉은 융단, 성스러운 촛대.
"오." 느릿한 시선이 불씨를 발견했다.
 
고운 흰 바닥 위로 융단이 가지런하게 깔렸다. 엔젤라는 휘파람을 불면서 촛대로 또각또각 걸어갔다.

"글쎄. 곤란하다니까." 종교인이 헤나에게 집중한 사이 엔젤라는 몰래 촛대를 톡 걷어찼다. 양초에서 불꽃이 일렁인다. 작은 불씨가 바닥에 깔린 비단에 옮겨 붙었다. 흰색과 빨강이 거무스름하게 변질되면서 쾌쾌한 연기를 내뿜었다. 몰상식한 헤나에게 더러운 발로 신성한 공간을 짓밟았다고 길게 잔소리하던 종교인이 말을 멈췄다. 코를 킁킁거리더니 어디선가 탄내가 난다고 중얼거린다. 꽃을 무시하고 뒤를 돈 그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안 돼, 신이시여. 맙소사!" 건장한 남성이 소녀 같은 소리를 냈다.
"당장 어떻게든 해 봐!" 그가 신도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명령을 내렸다.
불씨가 하얀 바닥을 그을리니 종교인은 조급하게 굴었다. 물을 떠 와라. 천을 가져와라. 눈에 보이는 족족 사람을 시켜 온갖 심부름을 시키더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에 엔젤라는 실실 웃었다.
 
예상 못한 갑작스러운 사고에 인파가 좌충우돌 움직였다. 시꺼먼 연기에 서로의 어깨가 마구 부딪쳤다.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양동이에 물을 떠 왔다. 어떤 이는 신발로 불을 짓밟는다. 엔젤라는 배에 손을 올리고 깔깔 웃었다. 너무 크게 웃어서 허리가 뒤로 접혔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못했다. 다들 저 보잘것없는 불씨 하나 때문에 이 난리법석이라니. 키득거리는 웃음을 보자 꽃도 입꼬리를 헤죽거렸다.
엔젤라는 웃음을 뚝 멈췄다. 연두색 눈을 또렷하게 뜨고 헤나를 째려보더니 성큼 다가왔다. 손목을 확 우겨잡고 헤나를 안쪽으로 질질 끌고 갔다. 
 
끌려가면서도 꽃은 고개를 돌려대며 두리번거렸다. 기다랗고 매끄러운 목재 의자는 차곡차곡 가지런하게 정렬이 된 상태다. 딱 봐도 첫인상은 단정했으며 정숙을 요구하는 장소다웠다. 입구에 사람이 많은데도 벌써 좋은 자리는 꽉 찼더라. 불길을 잡기 위해 움직인 사람이 있는 반면 나 몰라라 하고 제 자리를 지키는 부류도 있었다.
 
앉아있는 사람을 피해 가며 꽃은 자리를 살폈다. 중앙에서 오른쪽 구석이 비었다. 엔젤라도 비슷한 곳을 발견했는지 둘은 눈이 딱 마주쳤다. 헤나는 웃었고 엔젤라는 마주 잡은 손을 옆으로 끌었다. 

"네가 안으로 들어가." 그녀가 턱짓한다.
꽃은 몸을 접어서 비좁은 자리로 들어갔다. 무릎이 앞 좌석에 닿아 엔젤라를 걱정했다.
"다른 데 앉을래?" 눈썹이 축 처졌다. 엔젤라는 자리에 털썩 앉더니 앞 좌석을 발로 쭉 밀었다. 끼이익 바닥이 긁혔다. 정연하게 나열된 좌석이 비뚤어지면서 공간이 넉넉해지자 그녀가 다리를 꼬았다. 소음에 기도하던 사람도 그녀를 쳐다봤다. 뻔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헤나도 멀뚱히 눈을 깜빡이다가 키득키득 웃었다.

"넌 정말 대단해." 헤나가 눈을 반짝였다. 다들 신실하게도 장소에 따른 분위기에 잠식되겠지만 엔젤라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가 존재하는 곳을 제 멋대로 꾸몄다. 제 행동이 곧 법칙인 듯 뻔뻔히 굴었지만 다들 속아 넘어갔을 거야.

들뜬 꽃은 손으로 입을 가렸다. 무색하게도 목소리가 신나게 새어 나왔다.

"앤지. 너무 멋있어." 헤나가 빨개진 얼굴로 칭찬을 쭉 나열했다. 얼굴을 가린 손바닥이 앞으로 향해 꽃은 우아해 보였다.
"상상도 못 한 행동을 넌 아주 쉽게 해. 언제나 당당한 네 모습 좋아. 세상에서 제일 좋아!" 헤나가 엔젤라를 밑도 끝도 없이 찬양했다.
엔젤라는 시큰둥해 보였지만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성당이 궁금하다던 헤나를 위해 몸소 이곳까지 예배를 드리려고 찾아왔으니 그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꽃이 말을 끝내지 않자 얼굴을 가린 흉터투성이 손 위에 엔젤라는 제 손도 올렸다. 하얀 손가락으로 헤나의 손을 붙잡아 쓱 내렸다.

"수다쟁이 같으니. 정숙해라." 꽃에 침묵을 요구했던 주제에 엔젤라는 뻔뻔했다.
"어릴 때처럼 수프를 얻어먹으려고 이곳에 온 줄 알아?" 등을 좌석에 푹 맡긴 채 그녀가 놀렸다.
"무슨 배짱으로 성당에 왔냐?" 엔젤라는 맨발을 툭 쳐다본다. 키득거리며 주홍색 머리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힘이 가해진 대로 헤나의 고개는 밀렸다.

"신발은 갑갑한데..."
"취향이나 생각해 둬."

둘이 떠드는 동안 퍼진 불씨는 꺼졌다. 사태가 마무리되자 각자 정해놓은 듯 자리에 척척 앉았다. 빽빽하게 좌석을 사람이 채워가니 꽃은 의자가 기다란 이유를 알아챘다. 벽에 매달린 신을 배경으로 중앙에서 한 남자가 큼 하고 지루한 시작을 알렸다.
 
엔젤라는 설교를 듣는 둥 마는 둥 제 손톱만 봤다. 꽃은 작게 미소 지으며 시선을 떼지 않았다. 얼추 끝나가니 어린 성가대가 입을 연다. 감미로운 목소리가 건물 내부를 울렸다. 헤나는 귀로 목소리를, 눈으로 화려한 스테인리스에 감탄했다. 벽에 걸린 창백한 동상을 보며 넋을 뺐다. 
그는 유일신이며 인간들은 그를 태양처럼 바라고 갈망한다. 순진한 인간들은 저 가상의 존재를 우러러보면서 그가 내려쬐는 은혜에 삶을 유지할 의지를 얻겠지.
 
헤나가 불경한 모독에 빠진 사이 엔젤라는 싫증이 나서 발로 앞 좌석을 툭툭 건드려댔다. 그렇게 힘들까. 꽃은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러다 옛 생각이 나서 입을 닫았다. 고향에서 마을 주민이 미쳐버리기 전 헤나에게 해준 이야기가 있다.
저 계집애는 뱃속에 거지새끼가 든 모양인지 매일 구걸을 해. 성당 앞에서 기웃거릴 때마다 물을 뿌리고 싶다고 저주를 토해내더라. 엔젤라는 먼지를 뒤집어쓴 소녀였어도 늘 고귀하고 빛이 나는 존재였다. 그녀가 어린 시절에 성가대의 일원이었다면 어땠을까?

꽃은 기도에 집중하는 척 추억에 파묻혔다. 사모하는 당신을 떠올렸다. 연약한 손이 널찍한 소매에 가려서 오밀조밀한 입으로 신을 찬양한다면. 만약 헤나가 그 찬사를 받는 신이라면 당장이라도. 어린 신도에게 무엇이든 다 해주겠다며 반드시. 단정하게 맺어진 깍지 아래로 까만 미소가 피어났다.
신도 인간도 안목이 없다. 거만한 그녀는 누군가를 따를 필요가 없다. 또 신도란 이지적인 현자가 맡을 역할이 아니다. 찬란한 엔젤라는 눈부시게 빛나며 헤나를 늘 이끌어주기에!
 
양손을 모아 신에게 꽃이 기도를 바친다. 헤나가 고개를 살짝 숙이니 단정하고 우아하다. 그 모습을 본 엔젤라는 손아귀를 폈다. 하얀 손길로 주홍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왜 그래. 정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헤나는 참 무해하다. 꽃이 엔젤라에게 눈을 접었다. 그녀는 헤나의 부드러운 눈꼬리에 손을 올리려다가 이내 거둔다. 다른 손으로 턱을 괴고 딴청을 부렸다.
"언제 끝나." 꽃은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지만 귀엽게 달아오른 귀를 발견했다. 모았던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까만 미소가 활짝 피었다. 신이여 들어보세요.
 
무조건 그녀는 꽃을 먼저 생각해요. 실존하는 저의 신은 짓궂어도 언제나 제 편이죠.
 
헤나는 엔젤라가 얼마나 대단하고 멋진 지 벽에 걸린 신에게 실컷 자랑했다. 엔젤라가 한심한 미소를 짓지 말라며 한 대 때리기 전까지 꽃은 그 짓을 계속했다.
 
 



   
꽃은 질리도록 같은 행위를 반복했어도 즐거웠다. 
"있잖아요. 오늘은..." 하얗게 벽에 달라붙은 신에게 엔젤라를 과시하고자 헤나는 성당을 찾았다. 엔젤라가 침대에 늘어진 사이 꽃은 슬쩍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잠꾸러기라서 아침 예배가 끝나기 전까지도 일어나지 못했다.
 
변함없이 헤나는 맨발이었다. 꽃은 딴지를 거는 인간에게 은은하게 굴었고 건물을 행보했다. 천장은 높고 기둥은 두꺼웠다. 화려한 조각상에 어여쁜 복장에 정말이지, 둘이서 때때로 구걸하러 갔던 촌동네 작은 성당과 다르게 괄목할 규모였다.
 
성당 앞에서 꾀죄죄한 옷을 입고 배고프다고 떼를 쓰는 어린아이를 봤다. 성스럽고 하얀 자태를 자랑하는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손님이었다. 푹 패인 볼에 퀭한 눈동자는 아이가 오죽 굶었는지 알 수 있는 잣대였다. 정문을 거지가 가로막고 구걸을 해대니 곧장 사람이 다가와 아이를 챙겨 그늘진 곳으로 갔다. 투덜거리는 아이의 목소리가 훤히 들렸다. 꽃은 성당에서 돌을 넣은 수프를 받고 땅에 부어버렸던 소녀를 떠올렸다. 어릴 적부터 보통이 아니었지. 꽃은 작게 웃었다.

정문에서 구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온몸을 붕대로 칭칭 감은 사내가 보였다. 헐거운 갑옷을 두른 그는 상처가 넓게 찢어져 신음을 내뱉었다. 구릿빛 피부 아래 분홍 속살이 보였다. 깊은 찰과상이었다. 그는 감염 때문인지 열이 펄펄 나는 듯 온몸이 빨갰다. 끙끙거리는 그에게 여인이 응원을 보탰다.
괜찮아요. 조금만 더 견뎌요. 그녀가 천을 미적지근한 물에 담갔고 그것이 눅눅하게 물을 빨아먹자 들어 올려 쭉 짰다. 여인이 촉촉한 천으로 사내의 이마를 닦아주었더니 남자는 고개를 푹 숙였다. 어깨가 떨리는 게 울고 있을지도 모르지.
온기가 퍼지는 장면은 진귀하다. 꽃은 병사에게 붕대를 꼼꼼히 감아주는 여인을 보며 엔젤라를 대입했다. 만약 그녀가 저런 선의를 베푼다면 어떨까. 헤나는 상상만으로도 얼굴이 새빨개졌다. 헤헤 웃다가 꽃은 냉큼 입을 닫았다.
 
연인을 떠올려 상황에 집어넣는 행위는 귀엽고 달콤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오만한 착각으로 모든 사람들은 헤나가 가꾼 소재가 되어 엔젤라로 편집되었다.
 
웅성거리는 마당은 소음이 넘쳐 시끄러웠다. 부정적인 감정 없이 해맑은 미소가 울려 퍼지니 꽃은 호기심이 절로 들었다. 꽃나무 아래에 남녀가 있었다. 다들 그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잘 어울린다며 휘파람을 불고 환호성도 터졌다. 통로에서 사람이 밀려들어오자 꽃은 기둥 뒤로 숨었다. 끊임없는 탄사에 헤나가 고개만 내밀었다. 파란 눈이 남녀를 향했다.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한다. 배시시 웃는 얼굴과 수줍어하는 남녀를 보니 꽃은 이것이 무엇인지 눈치챘다.
 
"결혼식." 누군가에게 아름답고도 소중한 추억이 될 수 있는 날이었다.
 
둘이서 영원히 맺어질 수 있다니 꽃이 가장 원하는 소원이었다.
그래서일까? 헤나는 결혼식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보았다. 꽃이 눈을 깜빡이며 남녀를 구경했다.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은 평화롭다. 좋은 날씨에 식물은 너그럽게 입가가 풀렸다. 떠들썩한 분위기가 잠시 주춤하더니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았고 헤나도 시선이 꽂혔다. 중후한 남성이 두루마리를 펼쳤지만 곧장 종이에서 시선을 거뒀다. 펼쳤던 두루마리를 탁 접고 그가 입꼬리를 올렸다. 자상한 미소를 선물 받은 남녀는 어깨를 올리고 한껏 수줍음을 뽐냈다.
 
"영혼을 바칠게. 영원히 함께하자."
누군가의 앞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맹세를 읊었다. 남자가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감싼 투명한 가림막을 거두었다. 그 안에서 미소로 단장한 신부는 얼굴이 발갛게 익었다. 여자의 분홍빛 뺨을 남자가 커다란 양손으로 감쌌다.
이 얼마나 부럽고 어여쁜가. 헤나는 숨을 꿀꺽 삼키고 손으로 가슴을 붙잡았다. 흉터투성이 손 아래로 옷이 구겨졌지만 이내 꽃이 손가락을 튕겼다.

"우와! 저것 좀 봐!" 누군가 하늘을 가리켰다.

고운 하늘빛 아래로 사람들이 탄성을 자아냈다. 허공에서 알록달록한 꽃비가 내렸다. 꽃 자체로 떨어지기도 하며 꽃잎이 휘날리기도 했다. 예쁘다고 소문이 자자한 꽃으로 하얗게 노랗게 빨갛게 가지런히 나풀거렸다. 앙증맞은 꽃잎은 바람에 마구 날렸다. 소중한 시간을 바람과 꽃이 꾸며주니 이곳이 천국일지도 모르겠다. 모두 남녀에게 박수를 보냈고 다들 신께서 맑은 하늘과 덧붙여 축복해 준다며 오두방정을 떨더라.

벽에 걸린 신을 대신해 괴물꽃이 은총을 내려주었단 사실을 안다면 지금 같은 반응일까?
 
꽃이 무심코 손가락을 뺨에 올렸다. 검지로 뺨을 톡톡 쳤다. 헤나는 텅 빈 눈을 감더니 원초적인 고민이 들었다. 그러나 잠깐이었다. 사모하는 당신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모든 생각은 꽃을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감았던 눈을 살포시 뜨고 꽃은 멀리서 행복으로 점철된 두 사람을 담았다.

여자의 뒷모습이 들썩거리고 남자는 어쩔 줄 모른다. 커다란 손을 허우적대는 꼴이 우습지만, 그가 하늘하늘하게 떨어지는 꽃을 손바닥을 펼쳐 붙잡았다. 어여쁜 꽃다발이 완성되자 신랑이 꽃비를 끌어모아 신부에게 바친다.

"우리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게."

당돌하고 강한 고백에 신부는 눈앞의 남성을 끌어안았다. 여자가 해맑게 웃으며 운다. 강렬하고도 복합적인 감정에 헤나는 눈을 크게 떴다. 속이 쓰리고 울렁거리지만 멈출 수 없는...

"아, 안 돼. 싫어......" 헤나가 신부에게 엔젤라의 얼굴을 집어넣었다.

꽃이 시들었다.
고개가 푹 꺼지자 꽃잎이 지는 듯 생기가 깡그리 옅어진다. 헤나가 제 분수를 잊고 인간을 흉내 내서 그럴까. 아니면 식물이 기어이 심장을 만든 걸까. 꽃은 온몸이 따끔했다. 가슴이 무너지는 아픔에 어깨가 앞으로 굽고, 허리도 푹 수그러졌다. 바들바들 떨리는 어깨를 억지로 손으로 꽉 붙잡았다. 어지간히 덜덜 떠는지 손이 미끄러져 팔뚝까지 내려왔다. 고운 옷이 처참하게 구겨진다. 무시무시한 손아귀에 팔이 우지끈 부러졌다. 어깨에서 팔이 대롱거리자 헤나는 팔에서 손을 뗐다. 파란 천 아래에서 살이 꿀렁거리며 해괴한 소리를 냈다.
팔은 금세 멀쩡해졌지만, 여전히 떨리는 손으로 꽃은 얼굴을 안쓰럽게 감쌌다. 손가락 사이로 물이 줄줄 샜다.

다 같이 귀여운 꽃비에 열광할 때 헤나는 맨발에서 뿌리가 터져 나온다. 모두가 축하를 울부짖으며 기쁘게 웃을 때 꽃은 시들었다.

헤나는 사모하는 당신을 떠올렸다.
 
손바닥을 얼굴에서 뗐다. 눅눅해진 손을 헤나가 멍하니 바라봤다. 펑펑 울었지만 얼굴은 붓지 않았다. 인간을 흉내 냈어도 한계가 보이는 몸에 줄곧 숨겨왔던 까만 미소처럼 얼굴도 어둡게 변했다.

"달콤한 냄새가 나지 않아?" 누군가는 코를 킁킁거렸다. 인간 개체 다수끼리 향기가 나네 마네 투닥거린다.

기둥 뒤에서 꽃은 기도를 표했다. 자라난 뿌리 탓에 무릎을 꿇을 수 없었지만 다소곳한 자세로 두 눈을 감고 양손을 꼭 모은 채 신에게 존경을 바쳤다. 어느새 인간성이 사라져 버린 얼굴이었어도 헤나는 최선을 다했다.

꽃은 단순했다. 결혼이 인간으로서 추구하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의 결정체라면, 엔젤라가 그 미래를 얻게끔 도와줄 거라고. 감긴 눈꺼풀이 파들파들 떨리고 매끄럽던 미간에 구김이 졌다.
소원은 오직 하나뿐. 꽃은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갖고 성취하기를 바랐다. 우둑, 단정히 마주 잡던 양손이 부러졌다. 손가락이 박살이 나 주먹이 거꾸로 쥐어졌다. 우두둑우두둑.

"저건 앤지가 아니야."

그녀의 얼굴을 집어넣은 가짜였다. 꽃이 환상에 껌뻑 넘어갔으니 손끝이 가지처럼 딱딱해진다. 결혼식이 끝나고 두 사람은 안락하게 둘만의 집에서 행복을 누리겠지. 당신을 위해 요리하고 선물하고 침대에서는 알콩달콩 즐거운 시간을 보낼 거야. 그리고 당신밖에 모를 거야. 그녀가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당신을 바라봐줄 거야.
만약 엔젤라가 누군가의 아내가 된다면. 꽃은.
 
"앤지가 행복하다면 괜찮아. 앤지가 행복하다면 괜찮아. 전부 괜찮아. 그래. 그럴 수 있어." 하하 웃었다.
기괴한 미소가 입가에서 비틀어졌다. 놀랍게도 헤나는 표정을 처음 짓는 사람 같았다. 엔젤라가 행복하다면 괜찮아. 똑같은 말을 반복했지만 마음에 없는 거짓이었다.

"내 말 맞지. 달콤한 향기가 난다니까!" 여자가 옆 남자의 팔뚝을 툭 쳤다. 남자도 코를 킁킁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인정할 정도로 서글픈 향기가 널리 날뛰었다.
 
거짓감정에 동조해 꽃비가 일제히 반응했다. 곪아버린 고름이 터지듯 결혼식에 추잡한 범벅질을 묻혔다. 새초롬하게 떨어지던 작은 꽃들은 축복이 아니었다. 신비롭던 꽃비는 축 늘어지고 시들어버렸다. 꽃잎이 썩어가며 역겨운 진액을 내뿜었다. 더럽고 끈적였다. 꽃을 소중히 안고 있던 사람들은 얼굴이 구겨졌다. 욕설을 내뱉고 손을 천에 마구 문댔으며 쓰레기로 변모한 꽃을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꽃을 험악하게 짓밟고 도륙했음에도 인간은 화가 덜 풀렸다. 누군가를 표적 삼아 죗값을 치러야만 했다. 그 대상은 방금까지 축복받은 남녀였다.
 
모두 남녀를 봤다. 냉정이 뚝뚝 흐르는 눈빛으로 차갑게 남녀를 난도질했다. 불쌍한 남녀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고 싶은 걸까. 망가진 꽃에서 불쾌한 냄새가 풍겼고 자상한 미소를 던졌던 남자가 시작을 알렸다.
 
"애초에 이딴 역할 맡지 않았어야 했다." 남자가 두루마리를 찢었다.
다들 개화하는 꽃을 따라 야유를 던졌다. 차라리 말뿐이었으면 좋았을 걸. 돌이 날아와 베일을 스쳤다. 고운 천이 찢겼다. 남녀는 어디부터 달래야 할지 모른 채 눈동자를 떼굴떼굴 굴렸다. 방금까지 보였던 반짝임은 짧은 꿈처럼 사라졌다.
 
"저주다! 신에게 저주받았어!"
"그들을 당장 이 마을에서 내쫓아야 돼!"
"늪지로 썩 꺼져!"
 
하늘에서 우릉 소리가 났다. 남녀에게 꽃 대신 돌이 떨어졌다. 돌이 조금이라도 눅눅해진다면 덜 아플까. 비가 똑, 똑 떨어졌다. 헤나는 떨어지는 빗방울에 넋이 나가 입이 자그맣게 벌어졌다. 헤나의 변덕에 맞춰 비가 구름에서 흐른다.
 
"늪에 빠져라!" 인간은 재앙을 맞이한 듯 시끄럽게 군다.
 
기둥 뒤에서 헤나가 몸을 드러냈다. 순수한 식물답게 쏟아지는 빗물 틈에서 헤나는 더욱 고요해진다. 양팔을 벌려 자욱한 비를 만끽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물방울이 피부를 타고 흘러내린다. 꽃은 게슴츠레하게 눈을 떴다. 비가 눈으로 떨어져도 눈꺼풀은 자리를 지켰다. 다수와 동떨어진 행동을 해도 모두 헤나를 스쳐간다. 투덜거림도 귓가를 스쳤다. 인간은 한 마음으로 남녀를 저주했다.

야속하게도 먹구름이 결혼식에 달려들었다. 이 근방을 소나기로 뒤덮을 속셈인지 사나운 비가 펼쳐졌다. 안전하게 천장 밑으로 대피한 사람들은 끝까지 남녀에게 삿대질을 하며 돌을 던졌다.
그렇게 돈독하게 굴던 남녀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뺨을 쓰다듬던 커다란 손은 여자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여자도 지지 않고 남자의 뺨을 손톱으로 긁었다. 서로를 향한 고약한 발길질에 흙탕물이 튄다.
 
"네가 꽃만 줍지 않았어도!"
"이 날을 정한 건 너야!"

꽃은 미움뿐인 광경에서 그저 사모하는 당신을 떠올렸다.
괴물꽃은 당신을 너무 좋아해서 사람을 흉내 내는 미련한 식물이다. 당신밖에 모르는 잔인한 순정이 주변을 어떻게 망치는지 혹시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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