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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창작

괴물꽃: 1. 무덤에서 피어난 꽃

by 넴 박 2024. 7. 28.

비석이 볼품없이 널브러진 이 공동묘지는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관리가 되지 않아 이곳저곳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고 죽은 자를 위하는 문구는 풍파로 닳아 희미해졌다. 버려진 이곳을 찾아올 사람은 없을 텐데.

하늘이 우중충하게 비를 머금은 어느 날 장정이 수레에서 시체 두 구를 내렸다. 험악한 손길에 철퍽 소리가 났다. 이어서 신부가 흙에 발을 올렸다. 삐꺽거리는 수레에서 아이가 고개를 빼꼼 내민다. 장정은 미리 파 둔 구멍에 시체를 차례차례 떨궜다. 쿵 하고 묵직한 울림이 밑으로 떨어지자 아이도 어깨가 축 처졌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침묵 가운데에서 아이가 광경을 지켜봤다. 안경 쓴 신부는 미리 적어온 추도문을 찾느라 품을 뒤적거리고 무심하게 삽은 땅에 퍽 박혔다. 흙이 삽을 붙잡자 장정은 손에 힘을 줬다. 어렵지 않게 삽이 다시 공기를 쐬었지만 눅눅한 흙이 아이 옆으로 튀었다. 험악한 삽질에 아이는 관이 망가질까 봐 장정을 노려봤다. 장정이 몸이 밑으로 꺼질수록 아이가 걱정을 담아 눈썹을 찌푸린다.

시체 두 구는 움푹 파인 흙 속에 터를 잡았다. 아이는 지하에 눈길을 줬다. 구멍 경계에서 쭈그려 앉았다. 가만히 땅속을 살폈다. 인간에게 버려진 공동묘지답게 형편없는 장소였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흙은 물기로 가득했다. 아이는 손톱을 초조하게 물어뜯으면서 아이는 흙을 다루는 이에게 빽 따졌다.

"조심히 다뤄!"
 
매정한 장정은 땅속에서 팔을 뻗어 아이의 어깨를 툭 밀쳤다. 귀찮다는 양 먼 곳을 향해 턱짓했다. 작은 어깨에 커다란 손이 닿자 아이는 땅바닥에 엉덩이를 쿵 찧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장정을 노려보지만 그는 삽질에 열중했다. 그는 축축한 땅을 파다가 삽에 묻은 뿌리를 뗐다. 얼추 쇠붙이가 정리되자 바닥에 삽을 우뚝 세웠다. 제 결과물에 만족한 장정은 흙으로 얼룩진 손을 툭툭 털었다. 장정이 신부에게 마무리를 짓자고 알린다. 아이도 투덜거리며 장정 옆에 섰다.

다들 땅에 파묻힌 시체처럼 끔찍하도록 침묵을 지켰다. 아이는 지하세계가 예정된 아래를 빤히 쳐다봤다. 모두가 입을 다물었을 때 삽질로 두 동강 난 지렁이가 시체 위로 떨어져 꿈틀거렸다. 작은 존재였어도 고요를 깨기에 충분했다. 삽질에 방해가 되어 잘라낸 뿌리조각이 보였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만큼 지하는 너저분했다. 땅 위는 잡초가, 땅 아래는 뿌리가 자욱했다. 거추장스러운 나무뿌리는 간간이 삽을 막고 방해했다. 아이가 퀭한 얼굴로 구멍이 흙으로 채워지는 광경을 소리 없이 내려다본다. 삽이 흙을 퍼서 무심하게 구멍에 붓는다. 장정이 죽은 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으니 떨어진 흙은 모질게 시체를 때렸다. 금방 흙은 빈 곳을 채워간다.

장정이 흙을 절반쯤 퍼넣었다. 온몸에서 땀이 나는 장정과 달리 신부는 지루한지 입을 크게 쩍 벌렸다. 아이는 추잡스러운 하품을 보자 불쾌했다. 벌어진 입에 흙을 처넣고 싶었다. 문득 몸통이 잘린 지렁이는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했다. 본래 땅속을 누비던 생물이니 이제 숨통이 트였을까? 아니면 묵직한 흙에 깔려서 죽었을까? 이곳도 저곳도 전부 흙으로 범벅이 되었다. 아이는 갈색빛이 영 거슬렸다. 흙이 허름한 소매를 물들이듯 제 마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좀먹더라. 장정이 신부를 불렀다. 신부는 주변을 살펴보더니 목을 가다듬는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먹먹한 가식을 두르고 그는 안경을 고쳐 쓰듯 추도문을 읊는다. 
 
 



 
가냘픈 아이가 넓적한 돌을 질질 끌고 묘지로 들어왔다. 크고 납작한 돌이었다. 누구도 남녀에게 비석을 주지 않았으니 아이가 직접 돌을 골랐다. 돌은 아이만큼 무거웠지만 무덤을 꾸미겠다는 아이의 욕심이 더 묵직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는 숨을 가다듬는다. 아직 남녀가 묻힌 장소까지 몇 걸음 남았다.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휙 넘겼다. 아이는 입을 꾹 다물고 다시 무거운 돌에 손을 댔다. 지금까지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던 잡초가 돌을 가로막으니 화가 났다.
 
"더럽게 무겁네." 까만 꽃을 짓밟고 아이는 간신히 돌을 세로로 세웠다. 기껏 세운 돌이 쓰러지지 않도록 밑을 울퉁불퉁한 자갈로 쌓는다. 모양이 뒤죽박죽 섞이고 공통점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지만 아이는 보람찼다. 만약 남녀와 같이 지상을 밟고 있다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줄지도 모르지. 아이가 쓸데없는 상상을 했다. 슬픈 추억이 아이를 스쳐 지나가자 코가 시큰했다. 벌써 해가 서쪽으로 꺼져가는데 아이에게 임무가 남아있다. 두리번거리다 날카로운 돌멩이를 하나 찾아왔다. 작은 손으로 주어온 돌멩이를 꽉 쥐고 비석을 흉내 낸 돌을 상처 냈다. 까만 돌 위로 하얀 선이 그어진다. 선을 그을 뿐인데 왜 이리 어려울까. 하얀 선은 흐릿하고 삐뚤빼뚤했다. 서툴렀으니 같은 곳을 여러 번 긁기도 했다. 그래도 아이는 고집을 부렸다.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 손에 힘을 꽉 줬다.

"아파!" 땀 때문에 손이 미끄러웠을까. 돌멩이가 손에서 삐져나오면서 손바닥을 길게 찢었다. 빨간 피가 하얀 손을 타고 밑으로 뚝뚝 흘렀다. 손바닥을 쫙 펴고 아이는 흐르는 피를 무심히 쳐다본다. 곧 아무렇지도 않게 손바닥을 천에 뭉개고 해야 할 일을 계속했다. 드륵거리는 소리가 났다. 오늘따라 노을이 길다. 노랗게 바뀐 풍경 아래에서 아이는 문구를 완성했다.
 
직접 만든 비석 앞에 아이는 양 무릎을 다소곳하게 꿇었다. 흙에 바지가 더러워지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다친 손바닥을 감싼 모양새로 손을 모았다. 아이는 두 사람을 위해 기도를 바쳤다. 바람이 아이를 방해했다. 뒤에서 세차게 불어 노란 머리카락이 뒤집어졌다. 그때 이 세상에 홀로 남은 서러움이 터졌다.
 
커다란 눈 끝에서 눈물이 방울거린다. 남녀가 땅에 묻혀도 덤덤한 표정으로 관에 덮인 흙을 바라보던 아이였다. 혼자인 지금 슬픔이 아이를 감쌌다. 작고 마른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찢어진 상처를 잊고 손바닥을 얼굴에 댔다. 반으로 쭉 그어진 자국대로 손바닥에 딱지가 졌다. 여전히 아이는 눈물을 쏟아냈다. 조금이나마 붙었던 상처가 벌써 벌어진 걸까? 끅끅거리며 아이가 몸을 앞으로 숙였다. 아이는 산소가 모자란 지 히끅거리며 딸꾹질을 했다. 무릎으로 바닥을 기면서 직접 만든 무덤에 향했다. 비틀거려도 끝내 돌을 껴안았다. 딱딱함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비석을 힘껏 껴안았다. 간절함이 담긴 손길은 단단한 돌에 빨간 흔적을 남겼다. 연약한 피부가 덩달아 빨개졌다. 아픔을 모르고 아이는 허공에 원망을 읊어댄다.
 
"...보, 보고 싶어." 
악을 쓰고 욕을 뱉어도 결국 그리움이지.  
 
 



 
소녀는 질릴만치 꾸준하게 무덤에 얼굴을 비추었다. 낮이든 밤이든 무분별한 시간에 이곳을 찾아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상관하지 않고 쭉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굴었다. 소녀는 무덤을 위한 드문 손님이었다. 비석에 기대어 하루일과를 자랑했다. 울고 웃고 소리를 지르고 아주 천연덕스럽게 입을 나불거렸다. 그런 소녀를 꽃이 환영하더라. 까만 꽃은 언제 짓밟혔다는 듯 꽃잎을 예쁘게 뽐냈지만, 말 못 하는 식물이 오죽 존재감이 있겠어.
 
시체가 땅 속에 처 박혀도 덤덤하게 높아지는 흙을 바라보던 아이였다. 혼자 남은 어린아이에게 어른은 징그러운 시선을 보냈다. 추도문을 읽기보다 소녀를 위아래로 살피기 바쁜 신부에 장정은 무심하다 못해 몰상식했다. 아이는 제발 함부로 삽을 휘두르지 말라며 남자를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주변에서 애도를 도와주는 척 죽음을 조롱했다. 아이는 제 처지를 깨달았는지 어느새 가만히 있더라. 아이가 아이답지 않으니 철이 일찍 들었다고 여겼다. 

소녀가 무덤에 화풀이한 만큼 꽃이 남몰래 소녀를 훔쳐보는 밤이 여럿 지났다.

꽃은 가볍고 쫑쫑거리는 발걸음을 왠지 모르게 기대했다. 피어난 기대심으로 꽃이 소녀에게 관심을 쏟았다. 매일 이곳에서 꽃은 소녀를 기다렸다. 그때마다 들릴 듯 말 듯 작게 신발을 끄니까 멀리서도 아이인 줄 알았다. 고대하던 방문에 꽃은 꽃잎을 활짝 폈다. 애석하게도 소녀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녹색 식물은 주눅 없이 생기를 뽐낸다. 금방 끙끙거리는 소리가 근처까지 왔다. 소녀가 옆구리에 대충 끼워둔 넝마가 떨어지지 않게 팔로 꼭 붙잡았다. 빨개진 얼굴로 손수 만든 비석에 도착했다. 꼿꼿하게 서 있는 돌을 한 번 보더니 가져왔던 더러운 천을 그 위에 걸었다. 꽃은 밑에서 낡은 천 조각을 보았다. 소녀가 새롭게 장만한 담요인가 보다. 꽃은 어두운 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어린 소녀가 무슨 담력인지 낡은 담요를 가져와 밤마다 비석 옆에서 잠을 잤다. 추운지 온몸을 웅크린 채 천을 꽉 쥐었다. 새벽에 몸을 오들오들 떨어도 소녀는 무덤 옆에서 태양을 기다리는 기행을 저질렀다. 적막한 밤은 소녀에게 그리움을 선물로 줬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수습이 불가능한 후회에 폭싹 젖어버린 감정덩어리는 눈물샘으로 터져 나왔다. 소녀가 눈을 부릅뜨지만 눈물이 뚝뚝 흘렀다. 멀리서 짐승이 울어도 소녀는 무섭지 않았다. 미어 넘치는 슬픔에 숲에 주는 공포를 잊었다. 작은 손으로 천을 끄집어 올렸다. 소녀가 낡은 담요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비석이 모르길 바라는 의도였을까? 천으로 비밀을 꽁꽁 감싸도 소용이 없었다. 소녀가 얼마나 애달픈지 꽃은 전부 안다. 담요 밑에서 꽃은 소녀와 함께했으니. 눈물샘에서 모아둔 눈물을 다 뽑아낸 뒤에야 기절하듯 소녀가 잠에 빠졌다. 소녀는 눈을 뜨면 눈물을 뱉고 잠이 들면 꽃을 뭉갰다. 그래도 꽃은 상관없었다. 꽃은 담요를 같이 덮으면서 소녀에게 들리지 않을 위로를 건넸다. 어느덧 꽃은 빨갛게 부은 눈을 어루만지고 싶었다.

"제대로 물려준 것도 없어."
소녀가 발 밑에 피어난 꽃을 보고 이게 유산이냐고 투덜거린다. 드물다던 까만 꽃. 신발로 꽃 봉오리를 툭툭 쳤다. 발질에 맞춰 꽃이 흔들흔들 춤을 춘다. 마치 꽃이 덩달아 끄덕이는 착각에 빠진다. 고요했던 이곳이 소녀로 시끌벅적하다. 꽃은 강제로 고개가 끄덕여져도 낯선 소란이 마음에 들었다. 소녀는 멍하니 마을의 전설을 떠올렸다.
 
"그 이야기는 질리도록 들어서 전부 외웠지." 낡은 담요가 닳아 없어진 만큼 소녀는 의젓해졌다. 소녀가 단단하게 고정했다 한들 밑 받침돌이 무덤을 버티긴 힘들었을까. 정자세로 박힌 돌이 중심을 잃고 살짝 비뚤어졌다. 애꿎게도 덩굴이 불균형에 도움을 주고 싶은지 비석에 찰싹 달라붙는다. 비척거리는 덩굴이 비석을 소용돌이 모양으로 타고 올라갔다. 칙칙한 비석에 푸른 덩굴이 붙어있으니 신비롭다. 회색에 녹색이 번져 생명력을 부여했다. 소녀가 만든 무덤이 점차 자연과 어울리더라. 덩달아 꽃은 소녀를 바랐다. 꽃이 하늘에 간절히 소원하자 들러붙은 덩굴에서 눈이 파랗게 폈다. 마치 기적처럼 갓 태어난 외눈은 떼굴떼굴 동공을 굴리며 소녀를 찾았다. 눈앞에서 소녀가 기도한다. 눈은 순식간에 덩굴을 타고 올라가 비석 뒤로 숨었다. 눈동자를 몰래 소녀에게 힐끔거린다. 깔끔하고 선명한 세상에 처음으로 꽃은 소녀를 담았다.

기도를 마친 소녀는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을 귓가에 넘겼다. 바람이 상쾌하게 불었다. 노란 머리카락이 연하게 하늘을 꾸몄다. 예쁘장한 하얀 얼굴이 드러났다. 깜빡임도 잊고 눈알이 골몰히 소녀를 바라본다. 똑 부러질 듯한 곧은 시선과 마주치는 줄 알았다. 외눈은 덩굴을 타고 살금살금 내려왔다.
 
표정은 곧 불만으로 바뀌었다. 소녀가 연두색 눈을 가늘게 찌푸렸다. 소녀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텅 빈 위장이 민망한지 배를 움켜잡는다. 꼬르륵꼬르륵. 소녀가 굶주린 위장이 있을 법한 위치를 노려보지만 허기에 속이 쓰렸다. 식사도 일이라며 투덜거리자 제 나잇대처럼 보였다. 신발을 끌고 숲으로 향했다. 덤불에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이 쫑쫑거린다. 작은 뒷모습이 앙증맞다. 외눈이 비석 위로 올라왔다. 깜빡깜빡 눈을 감았다가 뜬다. 나무열매? 버찌? 아니면 산딸기라도 찾으러 가는 걸까?
 
배가 곪아도 소녀는 끊임없이 감정에 장작을 넣었다. 타락한 부랑아에게 궁핍하고 초라한 고향은 손길을 보태주지 않았다. 어른은 소녀를 멸시하고 비슷한 또래는 손가락질을 해댔다. 형편없는 곳에 걸맞은 인간이 있는 법이지. 소녀는 생각 대신 덤불을 헤집었다. 작아도 세 명이 살던 집이었다. 소녀를 지켜줄 사람이 사라지자 옆집은 작은 집을 보며 군침을 삼켰다. 소녀는 감쪽같이 속고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치밀하게 계획된 음모를 소녀가 홀로 이기기란 승률이 무에 가까워서. 

 

"아직 덜 배고픈가 보네." 잡념을 집중으로 억누른다. 덤불 속에서 설익은 열매를 찾았다. 작은 손을 가지 사이로 욱여넣었다. 잎이 바스락거린다. 이파리가 팔을 간지럽히고 얼굴을 찔렀다. 소녀는 방해되는 잎사귀를 퍽 뜯었다. 불쌍한 잎을 때리고 손아귀로 가지를 꽉 구부리다가 이내 차분해졌다. 
 
"엔젤라. 똑똑하게 굴어."

손으로 열매를 움켜잡자 과즙이 살짝 새어 나왔다. 소녀가 제 손바닥을 핥더니 시큼하다며 열매를 평가한다. 조금 맛을 본 열매를 먹은 뒤로도 몸에서 이상을 찾지 못했다. 제 안목에 소녀가 입꼬리를 히죽 올린다. 열매를 하나 둘 따면서 소녀가 제 이름을 읊고 자신을 달랬다. 터전을 잃은 지금 칭찬이 필요한 때였다. 무덤을 비밀기지로 삼다니 잘한 선택이라고. 엔젤라는 자신을 챙길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라는 걸 일찍이 깨달은 현명한 소녀였다. 어느새 열매를 한 아름 땄다. 소녀가 야무지게 스스로를 보듬는 동안 이곳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난 존재가 눈을 자꾸만 깜빡인다. 

눈알이 소녀를 따라가려고 드니 무덤에 엮인 덩굴이 팽팽해진다. 눈알이 비석 위를 굴러가다가 툭 떨어졌다. 외눈이 비석을 타고 대롱대롱 매달리며 추를 자처했다. 바닥에 닿진 않았어도 덩굴이 무게로 축 늘어졌다. 외눈은 흔들리면서도 가능한 소녀를 쭉 시야에 넣고 싶었다. 덩굴을 타고 눈알이 굴러간다. 외눈을 가늘게 뜨면서 소녀가 수풀에 가릴 때까지 지켜봤다. 덩굴에 붙은 눈이 파랗게 깜빡였다. 공동묘지에 피어난 꽃은 이름 모를 소녀가 궁금하다.
 
 


 

헤나, 이제는 가루가 되어버린 비석에서 꽃은 이름을 훔쳤다. 소녀에게 뭉개졌어도 새초롬한 이 꽃은 시체를 먹고 자라는 어두운 존재였다. 까만 꽃은 작고 희소하니까 모두가 탐내고도 남을 보물로 여겨진다. 비록 성장이 끝나면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흉악한 꽃이 되었어도.
무덤에서 고고하게 피어난 꽃을 누구든지 채집하길 바랐다. 꽃이 돈을 부른다는 소문이 돌았으니까. 소문에서 군침이 뚝뚝 흐르는 만큼 욕망이 담긴 손길은 식물을 배려하지 않았다. 추악한 관심이 헤나에게 흔적을 잔뜩 새겼다. 다들 꽃을 캐기 위해 돌로 뿌리를 찍거나 손으로 가지를 뜯으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사방에서 모진 고통이 내려온다. 잎사귀가 찢기고 꽃잎이 떨어져도 헤나는 침묵을 꾹 지켰다. 꽃은 벙어리니까.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줄 모르니까 이래도 괜찮은 줄 았았다.

고통이 커질수록 서글픈 향이 뿌옇게 넓어졌다. 곡괭이질을 해대자 뿌리에서 끈적한 진액이 흘렀다. 누군가는 뿌리를 들추고 채집이 성공했단 기쁨에 사로잡히겠지. 헤나는 순순하지 않았다. 꽃이 동물을 고요하게 이곳으로 이끌었다. 슬프고도 모두를 유혹하는 향기는 안개가 되었다. 안개가 무덤을 향기로 채웠다.

"아, 달콤한 향기......" 곡괭이가 바닥에 떨궈진다. 채집꾼이 숨을 깊게 쉬었다. 향기가 기관지를 타고 들어간다. 이곳에 온 이유도 망각하고 남자는 입꼬리를 길게 늘였다. 늑대가 낮게 목을 울리는 소리가 났다.

탐욕이 아무리 헤나를 겨누어도 까만 꽃 근처에는 짐승이 들끓었다. 슬금 다가온 늑대가 남자의 옆구리를 깨물었다. 무덤에 빨간 피가 튀었다. 늑대는 편식 없이 남자를 골고루 씹었다. 팔은 아작 나고 한쪽 다리가 없어졌다. 창자를 빼내어 쩝쩝거리던 짐승은 배가 부르자 등을 돌렸다. 뒷정리는 헤나의 몫이었다. 헤나는 살짝 드러난 뿌리를 꿈틀거렸다. 조금씩 지상 위로 뿌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뿌리는 나와도 나와도 끝이 없다. 두껍고 기다란 뿌리가 시체에 꿀렁거리며 기어갔다. 금방 뿌리에 시체가 닿았다. 시체는 순식간에 물처럼 땅으로 녹아내렸다. 식었던 피가 헤나로 하여금 뜨겁게 끓었다. 부글거리는 웅덩이를 무시한 채 꽃은 느릿하게 제 위치로 돌아간다. 뿌리가 영양분을 원하자 축축했던 흙이 바싹 말랐다.

어리석은 인간이 맞이한 최후는 끔찍했다. 꽃은 새침하게 꽃잎을 자랑했다. 비린내는 서글픈 향기에 지워지겠지. 자연은 순환으로 돌아가고 공생이란 아름다운 덕목이라서. 꽃과 짐승은 사이좋게 채집꾼을 나눠 먹었다. 오늘따라 금방 끝났다. 소녀를 위해 눈을 만든 덕분일까?
 
생기 없는 공동묘지는 헤나의 텃밭이자 산짐승이 활보하는 터전이었다. 헤나가 짐승에게 간섭하지 않아서 짐승은 주제를 모르고 영역을 넓혔다. 소녀가 비밀기지를 자주 찾아오니 숲 속 짐승은 입맛을 다진다. 인간의 작고 여린 생명체는 군침 도는 먹이였기에 꽃이 제시한 약속을 어기고 굶주린 늑대가 무덤에 침범했다. 늑대는 커다란 발자국을 땅에다 새긴다. 기도하는 소녀를 발견해 짐승은 이빨을 드러냈다.
"옆집 아줌마가 나한테 물을 뿌렸어." 묘비에 불만 섞인 일과를 토로하던 소녀를 늑대가 발견했다. 짐승이 추모를 망쳤다. 늑대는 소녀에게 이빨을 하얗게 내세우며 목을 울린다. 위협이 담긴 울림에 엔젤라는 등골이 오싹해졌고 뒤를 볼 자신이 없다. 소녀가 손아귀를 꽉 움켜잡는다. 공포로 온몸에서 삐질삐질 땀이 났다. 소녀는 늑대를 자극시킬까 봐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 무서운 상상이 저절로 들었다. 곧 늑대가 달려들어 소녀를 찢겠지. 짐승이 발톱에 묻은 피와 뇌수를 마시며 남은 살점을 게걸스럽게 먹을 거야.
 
비석에서 몰래 눈이 피었다. 파랗게 깜빡이던 외눈이 벌벌 떠는 소녀를 발견했다. 또르륵 거리며 외눈은 늑대와 소녀를 번갈아 쳐다봤다. 꽃이 훔쳐보는 줄 모르고 늑대가 컹 짖는다. 큼직한 발이 소녀에게 가까이 온다. 무덤 앞에서 벌벌 떠는 소녀를 보자 헤나는 눈을 찌푸렸다. 또록 굴러가는 눈알은 짐승한테 식사를 허락하지 않았다. 늑대가 더러운 입을 쩍 벌리며 엔젤라에게 달려든다. 소녀는 공포심에 사로잡혀 무덤을 껴안았다. 비석이 중심을 잃고 위태롭게 기울었다. 아, 운도 없지. 엔젤라가 불행한 제 운명을 탓하는 순간 헤나는 날카롭게 벼른 뿌리를 움직였다. 꽃이 밑에서 늑대를 쿡 찔렀다. 몸이 꿰뚫린 늑대는 온몸을 땅에 뒹굴었다. 짐승이 흙을 날리도록 깽깽 몸부림쳤다. 고통에 온몸을 뒤척이고 늑대는 절름발이가 되어 이곳을 떠났다. 절뚝거리는 모습을 보자 꽃은 만족스럽다. 동그란 눈알이 눈꺼풀을 접고 가늘어진다. 
 
천적이라도 나타났던 걸까? 엔젤라는 순진하게 의문이 들었다. 쓰러진 무덤에서 손을 떼고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망가진 비석을 고칠 생각도 못하고 철썩 주저앉았다. 소녀는 다리에 힘이 풀리고 호흡을 잊을 정도로 무서웠다. 소녀는 신을 믿지 않지만 하늘에 감사를 전했다. 부모가 묻힌 곳에 자식의 피를 바칠 뻔했다. 죄악을 저지르지 않도록 신이 도와주셨다. 긴장으로 굳은 무릎을 쭉 폈다. 다리에 묻은 흙을 털다가 뒤늦게 덩굴이 눈에 거슬린다.


"지저분해." 언제 이만큼 뻗었냐며 초록 줄기를 끄집어 내린다. 엔젤라는 감사할 주체를 잘못 고르고 작은 손으로 무덤을 대강 정리했다. 끙끙거리며 비석을 세웠다. 힘들어서 아래를 보자 까만 꽃이 보였다. 발에 밟히고 비석이 무너졌어도 발 밑에서 꽃은 여전히 푸르렀다. 


"너도 참 질기다." 엔젤라는 꽃이 반가웠다. 둘 다 살아남았다는 기쁨에 해맑게 미소 지었다. 꽃이 식물이라 다행이었다. 헤나는 늘 눈물만 봤지 웃음은 처음이라서. 숨이 턱 막히는 느낌에 어쩔 줄 몰랐다.
 
소녀가 보는 알록달록 색칠된 세상이 궁금했다. 흑백에서 지내던 꽃은 소녀와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보길 바랐다. 어설프게 인간을 따라한 외눈으로 줄곧 소녀를 지켜봤다. 생이란 아름다웠다. 꽃은 소녀가 눈부셨다.

헤나가 선물해 준 행운에 엔젤라는 반짝거린다. 살아있다는 기쁨으로 소녀가 찬란하게 빛났다. 소녀가 무거운 비석을 바로 세운다. 이번에는 더 단단하게 고정시킬 거라고 투덜거린다. 쫑알거리는 입이 작고 귀엽다. 꽃은 소녀가 처한 환경이 안타까웠다. 어떤 자식이라도 부모 앞에서 최후를 보내고 싶겠어.

"난 반드시 살아남을 거야." 비명을 지르던 손으로 눈을 찌르던. 꼭 어떻게든 할 거라고. 소녀가 덩굴을 마구 뜯으며 내뱉었다. 가소롭게도 어린 소녀는 반드시 묘지에서 벗어날 작정이었다. 말뿐이어도 상관없다. 가능성은 중요하지 않다. 자기 확신과 용기가 엔젤라를 당돌한 존재로 만들었다.
 
무엇이라도 그 찬란함을 느낄 정도로 밝게 빛났다. 눈부신 빛에 헤나는 더욱 소녀가 궁금해졌다. 본래 식물이란 태양을 사모하는 법이라서 결코 빛을 외면하지 못해. 절대 불가능하고 불경하게 삶을 저버리는 짓이나 마찬가지니까. 기적처럼 바로 앞에서 태양을 마주하니 몹시 뜨겁다. 설령 눈알이 녹는다 할지언정 빛을 끝까지 바라볼 거라 헤나는 다짐했다.
 
본능대로 꽃은 엔젤라에게 흠뻑 빠졌다. 연모란 뿌리가 물을 흡수하고 빛을 탐내는 잎사귀처럼 자연스럽다. 끊임없이 소녀를 몰래 지켜보다가 기어이 욕심이 생긴다. 누가 봐도 예쁠 엔젤라를 감상했다. 얼굴 안에 눈이 두 개. 코도 입도 하나씩. 팔과 다리는 두 개가 한 쌍. 손가락도 발가락도 다섯 개씩 각각 열 개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관음을 행했다. 인체는 복잡하고 공식이 많았다. 지금까지 먹은 시체를 기억해 내면서 꽃은 하루하루 조금씩 인간과 닮아가도록 형체를 가꾸었다.
 
 



  
그 애는 늘 비밀기지로 삼은 공동묘지를 찾아오니까 헤나는 때를 기다렸다. 수많은 연습으로 얼굴과 상체만큼은 인간처럼 얼추 형성했다. 그동안 엔젤라에게 인사하고 싶었던 어리숙한 꽃은 덤불 속에서 나무에 몸을 가린 채 손을 잔뜩 흔들었다. 수줍음이 많은 꽃이어도 혼자 지켜본 시간 덕분에 낯가림은 없었다. 하얀 옷에 주홍빛 머리카락은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엔젤라는 무덤에서 비슷한 또래를 발견하자 눈을 번쩍 떴다. 겁도 없이 무작정 헤나에게 달려왔다.
 
"뭐야? 여기에 사람이 왜 있어?"
엔젤라는 위아래로 헤나를 살폈다. 꼬질꼬질한 어린아이였다. 흙이 군데군데 스며든 옷을 걸쳤다. 소녀는 옷을 보자 왠지 모르게 수의가 떠오른다. 둘 다 꼴이 형편없어서 소녀는 피식 웃었다. 소녀는 경계를 몰라서 확 튀어나온 헤나에게 입을 조잘거렸다.
 
"수상한데 여기서 뭐 해?"
헤나는 엔젤라가 휙 다가오자 당황했다. 아직 다리는 완성하지 못했어. 가까이서 본다면 덜 완성된 흉물스러운 모습을 들킬 거야. 소녀가 깜짝 놀라면 어쩌지. 헤나는 말을 할 줄 몰라서 그저 얼굴이 빨개진 채 어버버거렸다. 어설프게 양손을 보이고 아무 말 없이 헤나가 눈치만 봤다. 엔젤라는 의아함에 고개로 삐딱선을 탄다.
 
"너 벙어리야?"
답답하게 숨어있지 말라고 가려진 수풀을 억지로 내렸다. 나무 밑은 어두워서 거미줄을 보지 못했다. 이슬을 머금은 거미줄은 투명하고 예쁘지만 촉감은 나빴다. 엔젤라는 덤불을 만지자마자 달라붙는 끈적한 느낌에 손을 확 뗐다. 풀과 옷에 손바닥을 문대봐도 불쾌감이 가시질 않았다. 홧김에 다리를 들어 거미줄을 짓밟았다. 덤불이 발길질에 쭉 꺾여 바닥에 닿는다. 이제 헤나를 가려주는 풀 따위 없다. 엔젤라는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늘에 가려져 있어도 움직임이 미약하게 보였다. 정체를 알고자 고개를 숙이고 눈에 힘을 줬다. 살점과 가지가 뒤섞인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추악하고 끔찍한 뿌리가 꿈틀거린다. 엔젤라는 저절로 비명이 나왔다.
 
"괴물!" 엔젤라는 겁에 질려 낯선 생물체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헤나가 마주친 연두색 눈에는 혐오가 가득했다. 엔젤라에게 순수한 마음뿐이던 꽃은 눈물이 주룩 나온다. 소녀가 뒷걸음질 쳐도 헤나는 우중충한 죄인처럼 엔젤라를 잠자코 쳐다봤다.
 
악감정을 직면하니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엔젤라가 놀랄까 봐 헤나는 들춰진 제 살점을 조금씩 꿈틀거리며 나무 뒤로 옮겼다. 물기가 섞인 꿀렁꿀렁한 소리가 났다. 엔젤라는 소름 끼쳤지만 눈앞의 존재에게 악의가 보이지 않았다. 헤나가 우는 동안 엔젤라는 사람인 척 구는 미지 생물체를 관찰했다. 쟤 앞에서 나는 한 입 거리도 안 되잖아. 괴물이라면 제 몰골을 과시하고 인간을 위협해야 마땅해. 왜 뿌리가 부끄러운 것처럼 숨길까? 엔젤라는 궁금했다. 호기심이 헤나에게 기회를 줬다.
 
"내가 자비롭게 굴 때 빨리 설명해."
헤나는 펑펑 울면서 꽃을 가리키고 자신을 가리킨다. 눈치 빠른 엔젤라는 헤나가 말하고 싶은 바를 흐릿하게 알아챘다.
 
"저 꽃이 널 이렇게 만들었다는 거야?"
소녀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손가락이 까만 꽃을 향하니 자연스레 전설이 떠올랐다. 헤나는 고개를 돌렸다. 다시 천천히 꽃을 가리키고 헤나는 자신에게 손바닥을 올린다.
 
"저 꽃이 너의 것이라고?" 마주한 고개질에 엔젤라는 호기심에 구멍이 났지만 말꼬리를 집요하게 잡았다. 전하고 싶었던 내용이 아니었어도 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저 꽃에 전설이 내려오는데. 혹시 알아?"
등잔 밑이 어두웠다. 엔젤라는 추측이 정답에 가까워지자 눈이 반짝거렸다. 소녀는 마을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들리지 않게 길게 읊었다. 꽃은 올라간 입가가 신기해서 바라봤다. 얌전히 식물처럼 굴었다. 이곳을 떠난 적 없던 헤나는 소녀가 알려주기를 기다렸다. 꽃은 눈을 멀뚱히 깜빡였다.
 
"사람을 유혹해 잡아먹는 괴물꽃 전설."
속세에 밝은 엔젤라는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더욱 발칙하게 입가를 씰룩였다. 

"네가 그 꽃이지?"
엔젤라가 휙 다가오자 헤나는 눈치를 보며 어쩔 줄 몰랐다. 빤히 쳐다보니까 부끄럽다.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엔젤라는 입꼬리를 만족스럽게 올리더니 헤나에게 바싹 붙었다. 발 밑에서 나뭇가지가 우지끈 부러졌다. 얼마 남지 않은 거리에 헤나는 얼굴을 붉히고 나무에 매달렸다. 잎사귀끼리 파랗게 부딪혀서 시끄럽다. 그래도 헤나는 말똥한 눈빛에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세상에 둘만 존재했다. 엔젤라가 침묵을 깨뜨렸다. 소녀는 거침없었다.
 
"유명한 괴물꽃이 날 잡아먹으려고 불렀나?"
 
헤나는 강하게 고개를 돌려댔다. 제 진심을 소녀가 몰라주자 눈썹도 억울한 모양으로 축 쳐졌다. 눈물이 주룩주룩 방울로 떨어졌다. 형편없는 얼굴이었다. 붉게 달아오른 꽃을 소녀가 가만히 쳐다봤다. 말 대신 눈물을 뱉다니. 엔젤라는 악명뿐인 그 꽃이 안쓰럽다고 느껴 손을 올려 눈물을 닦아준다.
 
"누가 보면 내가 널 잡아먹는 줄 알겠네."
투덜거리며 엔젤라는 구겨진 눈썹 사이를 꾹 눌러 주거나 눈가를 살살 어루만져줬다. 헤나는 멀리서 보던 존재가 가까이에 위치하니 눈앞이 멍해졌다. 금방이라도 눈이 멀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시야가 쭉 아련했다. 그 눈부심에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엔젤라는 그만 울라며 타박하지만 다정한 손길은 여전했다. 제 징그러운 뿌리로 엔젤라를 감쌀까 봐 헤나는 정신을 집중해야만 했다. 한계를 모르고 흙을 장악하는 나무처럼 감정도 순식간에 자라나는 중이었다. 헤나는 빛에 홀렸다. 꽃은 당신 없이 살 수 없다. 소녀가 있는 곳은 뿌리내려야 할 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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