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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1일 챌린지

롤러코스터 #오블완

by 넴 박 2024. 11. 11.

1. 그림

가브리엘 관계도

오늘은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롤러코스터를 탔고 저녁이 되자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간절해서 그만큼 상처 받았겠지. 그럴 수도 있는 거니까, 조금만 마음에 여유를 품도록 노력해야지... 열심히 기분을 환기 시키려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장소를 옮기고 꽤 부지런하게 굴었다.
 
 

2. 페스트: 사 놨던 이북을 다시 시도하면서 오늘로 다 읽었다. 

오랑처럼 다른 곳들에서도, 시간이 부족하고 성찰할 여유도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를 무턱대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
재앙이 항상 그냥 사라지는 건 아니고, 오히려 반복되는 악몽 속에서 사라지는 건 바로 사람들인데, 특히나 그 선두가 휴머니스트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혀 조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레바퀴처럼 안정되고도 똑같은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안일하게 일과를 보내던 사람들에게 페스트라는 재앙이 떨어진다.
 

그랑은 자신의 권리를 강하게 주장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약속받았던 조건들을 말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우선 그를 채용했던 상관이 오래전에 죽었고, 서기 자신도 보장받았던 조건들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게 진짜 문제인데, 조제프 그랑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랑의 말을 믿자면, 그는 ‘권리’라는 단어 앞에서 괴리감을 느껴서 늘 멈칫했고, ‘약속’이라는 단어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제 몫을 요구하는 대담함이 자신이 맡은 평범한 직책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불편함을 느꼈다. 한편 개인적인 자존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해서 ‘호의’, ‘간청’, ‘감사’ 등의 단어도 사용을 거부했다. 결국, 그랑은 딱 맞는 단어를 찾아낼 능력이 없어서 나이가 제법 들어서까지 급여가 형편없는 보잘것없는 직책을 계속 수행했던 것이다.
단순한 감정을 상기시키기 위한 가장 사소한 단어를 하나 선택하는 것도 그에게는 아주 힘든 일이었다. 아니,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아! 의사 선생님, 나 자신을 잘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는 리외를 만날 때마다 이렇게 한탄했다.


1) 유독 그랑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비참하고 슬펐다. 페스트가 이 사람을 공격하지 않길 바라면서 페이지를 넘겼다. 리외가 추측하는 무언가의 상상처럼 그랑이 책을 쓴다면 끝까지 써서 보답을 받으면 좋겠다고 쭉 기도했다. 

2) 사소한 곳에서 선을 행하고 모두를 위해 묵묵히 할 일을 했던 그랑이 끝에서 수정자국이 잔뜩 남은 원고를 태워달라고 부탁할 만큼 그는 위태로웠지만, 결국 잘 되어서 좋았다. 집착하던 형용사를 다 지우고 편지를 적은 그는 반드시 행복하겠지. 이때 비극이 끝나고 희망이 보여주는 장치가 좋았다. 페스트를 알리던 쥐떼가 페스트의 끝도 알려주더라.  
 

몇 주간 같은 소식, 같은 호소의 편지를 쓰고 쓰고 또 썼다. 그 결과 처음에는 심장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나왔던 생생한 말들이 차츰 의미를 잃고 말라버렸다.
우리는 종종 재미로 식구들이 귀가하며 누른 초인종 소리나 계단을 올라오는 익숙한 발소리가 들리는 듯 상상했다. 하지만 저녁 급행을 타고 왔다면 동네에 도착할 즈음에 맞춰서 집에 있어도, 아무리 바로 그 순간 기차의 운행이 멈췄다는 것을 잊기로 마음 먹어도, 이 '그런 척하는 놀이'는 명백히 계속 될 수 없었다.

 
관문폐쇄 이후 단절을 대하는 자세가 슬펐다. 뒤에 나오는 3부에서 절망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얼마나 지쳤는지 보여줬다. 피로누적으로 지키던 안전수칙을 잊거나 생략하고. 울면서 죽음을 애도하던 이들은 어느새 눈물 대신 숫자로 슬픔을 대신했다. 
 

"아뇨. 선생님은 이해하지 못하세요. 지금 가슴이 아니라 이성으로 말하고 있잖아요. 당신은 추상의 세계에 살고 있어요."
"아! 이제 알겠네. 공익적인 일이다, 이거군요. 하지만 공익은 개개인의 행복이 합쳐져서 이뤄지는 겁니다." 

 
1) 랑베트가 리외에게 이곳을 빠져나가도 괜찮다는 소견서를 작성해달라고 부탁하러 왔고 당신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당신같은 사람이 수천인데 예외를 둘 수 없다는 거절에 랑베트는 의사에게 말한다. 하지만 의사에게도 분명 추상은 존재하지만 개개인의 추상도 매일 보는 풍경과 감당하는 현실이 너무도 달랐다. 

  • 랑베트: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
  • 리외: 전염병 확산을 막아야 된다. 
“그런데 왜 내가 떠나는 것을 막지 않죠? 그럴 수 있잖아요.” 
리외는 습관적인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이고서, 랑베르 개인의 일이자 행복을 택한 선택인데 자신이 반대할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리외는 랑베르의 문제에 있어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나쁜가를 판단할 능력이 자신에게 없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내게 탈출을 서두르라고 하죠?” 
이번에는 리외가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나 역시 행복을 위해 뭔가 하고 싶기 때문일 거예요.”
"그런 게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줄곧 내가 이 도시의 이방인이고, 여러분과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볼 거 다 보고 난 지금, 내가 원했든 아니든 나는 이곳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일은 우리 모두의 일인 거죠." 

 
2) 나중가서 랑베트가 리외에게 오랑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하니까 정말 마음속에서 감동을 피어올랐다. 왜냐하면 그는 사랑이 정말 중요했으니까. 그가 오랑을 뒤로 한 채 혼자 토낄 줄 알았어. 혼자만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하는 그가 대단하고 그 깨달음을 얻기까지 얼마나 고뇌했을지... 고된 과정 끝에 선택한 그가 정말 멋지다. 


페스트에서 모두 타루를 사랑할거야.

"그만 털어놔 봐요, 타루 씨. 대체 왜 이런 일에 발 벗고 나서려는 거죠?"
"모릅니다. 어쩌면 내 도덕관이겠죠."
"도덕관? 어떤 도덕관이요?"
"이해심이요." 


1) 타루는 자원 보건위생대를 창설하고 온힘을 다 바쳐서 사람들을 도와준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 다가와서 그 속에서 희망을 보지 않을까? 그는 빨간 머리 외톨이 올배미의 문제를 직면한 뒤(타루는 검사였던 아버지가 범법자에게 사형을 내리는 걸 보고)정치에 뛰어들었다. 옥상에서 리외와 타루가 나눴던 대화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사람이 총살당하는 것을 본 적 있냐고, 총을 멀찍이서 쏘기는 커녕 사람과 총의 거리가 1.5미터밖에 되지 않는다고. 짤막한 거리에서 심장 근처를 집중사격해 주먹도 들어갈 구멍이 만들어진다고...  이런 세부 사항은 아무도 거론하지 않았으니까 몰랐을 거라고... 이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자 누군가는 타루에게 도덕적 결벽증이라고 이야기했나 보다. 무엇이 중요한 지 잘 생각해보라고 했나 보다. 그래도 중심을 잃지 않은 타루가 정말 멋있다.
 

우리는 잠시 방심해서 감염균을 다른 사람의 얼굴에 내쉬지 않으려고 계속 스스로를 경계해야 하는 겁니다. 병균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 이외의 것, 그러니까 건강이나 온전함, 무결점 등은 의지에 달려 있어요.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예요. 선량한 사람, 거의 누구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가능한 한 방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2) 타루가 리외에게 긴 토로를 하는데 길고 빠뜨릴 내용이 없더라. 대사가 아주 길었어. 그중에서 좋았던 부분만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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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서는 오늘날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요. 그래요, 나는 우리 모두가 페스트 환자라는 것을 알고 내내 부끄러웠고,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도 오늘도 여전히 평화를 찾아헤매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를 이해하고 그 누구와도 치명적인 적이 되지 않는 법을요. 페스트에서 낫기 위해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할 뿐입니다. 바로 그것이 평화를 되찾는 유일한 방법이고, 그러지 못해도 떳떳한 죽음을 맞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직 이 방법만이, 사람들을 편하게 해 줄 수 있고, 그들을 구원하지는 못한다 해도 어쨌든 최대한 해를 끼치지 않고, 심지어 종종 약간의 선까지도 행하도록 해 줍니다. 그리고 정확히 이런 이유로 나는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선의에서건 아니건, 사람을 죽이거나 살인을 정당화하는 모든 것과 타협하지 않기로 결심한 겁니다.


또한 이런 이유로, 당신 편에 서서 싸운다는 것 말고는 이번 페스트가 나에게는 별다를 게 없습니다. 나도 당신만큼이나 명백히 알고 있거든요(그래요, 리외 씨, 나는 세상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어요). 우리 각자가 모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요. 누구도, 이 세상에 그 누구도 페스트에 걸리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잠시 방심해서 감염균을 다른 사람의 얼굴에 내쉬지 않으려고 계속 스스로를 경계해야 하는 겁니다. 병균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 이외의 것, 그러니까 건강이나 온전함, 무결점 등은 의지에 달려 있어요.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예요. 선량한 사람, 거의 누구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가능한 한 방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방심하지 않으려면 의지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요, 리외 씨, 페스트 환자로 있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입니다만, 페스트 환자로 있지 않으려는 것은 더 피곤한 일입니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모든 사람이 피곤해 보이는 거예요. 오늘날 모든 사람이 심하든 약하든 조금씩은 페스트에 걸려 있으니까요.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이런 상태를 끝내고 싶어 하는 몇몇 사람이 죽음 이외에는 아무것도 그들을 해방시켜 주지 않을 극도의 피로를 자진해서 겪는 겁니다. 

 
신의 뜻이라고 설교하던 종교인이 있었다. 죽음으로 향하는 소년에게 혈청이 주입되면서 고통에 빠진 모습을 천천히 남김없이 바라본 뒤로 그는 바뀌었다. 치료도 거부한 채 소년이 느꼈을 그 고통을 전부 느낀 그는 페스트로 세상을 떠났다.
이해(혹은 신념일까)를 위해 고통을 택한 그 숭고한 모습에서 왜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 종교가 힘을 얻는지 조금은 알겠더라. 미래가 불투명하고 내 앞날도 알지 못할 때 누군가 먼저 아픈 길을 걷고, 길잡이가 되고, 힘든 원인을 알려준다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될까. 흐릿하고 안정치 못한 곳에 버팀목이 생긴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때(지금도 마찬가지겠죠) 이 책을 읽었다면 더욱 커다랗게 와 닿는 부분이 있을 텐데. 뒤늦게 읽었어도 충분히 현실과 비교할 구석이 많았다. 특히 어느 순간 코로나가 일상에 그대로 묻어버려서 가볍게 생각하고, 어쩌다 걸리는 감기와 비슷한 모양새가 된 곳에서 나는 이미 타루가 말한 것처럼 페스트에 걸린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에게 감염균을 내뱉지 않기 위해 늘 스스로를 다잡고 경계하고 방심을 놓지 말아야지. 코타루처럼 절망과 비극을 이용해 그 시간을 끝나지 않길 바라는 사람이 있지만 리외, 그랑, 타루처럼 타인을 도와주기 위해 힘쓰는 분들이 존재하기에 사회가 잘 굴러가겠지? 여러가지 생각을 만드는 작품이라 좋았어요. 잘 읽었어요! 


3. 표현으로 좋았던 것

  • 그랑의 원고
  • 쥐떼
  • 타루의 아버지 이야기 속 종합 열차 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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